혹시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의 죽음을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진리를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삶과 분리하여 철창 속에 가둬 놓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죽음을 마주하기가 두렵기 때문이겠죠. 어떤 이별이든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특히 죽음은 재회의 가능성이 아예 사라진다는 점에서 가장 큰 비통함을 느끼게 합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병사가 아닌 갑작스러운 사고사는 충격을 배가시킵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구절처럼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죽음에 기인한 극도의 고통을 회피하려는 마음은 수많은 창작물에서 ‘영생’이라는 테마로 승화되었습니다. 최근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영화 <원더랜드>도 영원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영화 <원더랜드>의 주인공 ‘정인(수지)’은 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남자친구 ‘태주’(박보검)를 ‘원더랜드’에서 우주인으로 복원합니다.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화하고 일상을 공유합니다.]
영화 <원더랜드>에는 죽었거나 의식 불명인 사람을 살아 있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등장합니다. ‘원더랜드’는 생명공학으로 사망한 인간의 신체를 되살려 내는 것은 아닙니다. 한 인간의 모든 기억과 습관, 말투, 행동 등을 물샐틈없이 학습한 인공지능이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서 망자에게 혼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원더랜드’에 사는 사람들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버추얼 휴먼(Virtual Human)’이 아니라 ‘버추얼 고스트(Virtual Ghost)’라고 해야 할까요? 그들은 서비스가 유지되는 동안 네트워크를 자유로이 오가며 살아갑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잊은 채로 말이죠.
[영화 <원더랜드>의 주인공 ‘바이리(탕웨이)’는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원더랜드’에서 고고학자가 되어 제2의 삶을 이어갑니다.]
‘원더랜드’ 서비스가 현실에서도 가능할까요? 현시점 전 세계 최고의 AI 회사들이 머리를 맞대더라도 영화 <원더랜드>에 나오는 것처럼 ‘자의식을 갖춘’ 버추얼 휴먼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자의식은 없지만 죽기 전의 외모, 성격, 정체성을 최대한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버추얼 휴먼조차도 먼 미래에나 가능할 듯합니다. 어떤 사람의 전 생애에 걸쳐 그 사람의 고유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친 모든 내적, 외적 요인들을 데이터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요즘에는 유명 인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많이 남겨 두기 때문에 실존 인물을 본뜬 버추얼 휴먼의 외모와 목소리만큼은 실제와 상당히 유사할 수도 있겠습니다. 외모와 목소리 데이터 외에는 버추얼 휴먼을 만드는 AI가 학습할 사람 관련 데이터가 부실할 것입니다. 결국 외모와 목소리는 비슷하더라도 나머지 특징들은 진짜와 전혀 다른 버추얼 휴먼이 탄생하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사용자들은 버추얼 휴먼은 가짜일 뿐이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느꼈던 특별한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 <원더랜드>에서는 사망 전 진짜 바이리(탕웨이)와 사망 후 ‘원더랜드’에 존재하는 버추얼 휴먼 바이리를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원더랜드’ 서비스만큼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아직 많지만 ‘원더랜드’와 유사한 콘셉트를 가진 국내외 서비스들이 이미 꽤 나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고 그와 함께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연장해 준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딥브레인AI의 ‘리메모리2’]
최근 한국의 생성형 AI 스타트업 딥브레인AI는 AI 추모 서비스 ‘리메모리2’를 상조 회사 프리드라이프의 상조 상품과 연계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 출시된 리메모리2는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아바타로 만들고 그 아바타가 고인의 생전 목소리로 남긴 메시지를 영상으로 제작합니다. 독자적인 기술을 활용해서 사진 한 장과 10초 정도의 음성만으로도 고인을 닮은 아바타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TTS(Text-To-Speech) 기술 덕분에 서비스 이용자들이 고인에게 듣고 싶은 말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고인의 목소리로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사이가 나빴던 아들이 뒤늦게 화해하는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아바타와 대화하며 감정 해소를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아바타는 아바타일 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원더랜드>에서는 이용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즉시 ‘원더랜드’ 서비스를 종료할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절대 돌아올 수 없고 버추얼 휴먼은 비트로 이루어진 가상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여러분은 화면 속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시겠습니까? (끝)
글 | 사업협력팀 김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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